고요한 마을 이면에
감춰진 낡은 갈등
고요한 마을 이면에
감춰진 낡은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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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행정, 표류하는 마지막 달동네

재개발 방식에 대한 서로 다른 목소리

송준영 기자 song@sisajournal-e.com
백사마을 이미지

104마을 주거지 보존구역 / 그래픽 = 김태길

서울시 노원구 불암산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백사마을은 유난히 추웠다. 인기척이 사라진 골목에는 길고양이만이 굶주린 울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평상에 앉아 수다를 떨던 이웃들은 떠나갔고 사연이 있는 일부만이 남았다. 깨끗하고 따뜻한 동네에서 산다는 꿈은 소통되지 않는 재개발에 밀려났다. 고요한 마을 풍경 속엔 스산하리 만큼이나 깊은 갈등이 자리잡았다.

갈등은 2012년 5월 백사마을 개발 방식이 정해지면서부터 시작했다. 서울시는 백사마을 재개발을 주거지 보전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서울에 몇 없는 달동네인 백사마을의 원형과 역사성을 살리겠다는 취지였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낡은 주택과 구불구불한 골목을 개보수하고 공원과 녹지를 만들어 전체 개발지역 18만8900㎡ 중 4만2700㎡를 한국판 그리스 산토리니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여기에 마을 운영을 공동체 방식으로 하자는 이른바 박원순식 재개발이 덧씌워졌다.

엇갈리는 말에 멈춰버린 재개발
엇갈리는 말에
멈춰버린 재개발

하지만 전면 재개발을 생각했던 주민들과 당시 시행사로 참여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반발했다. 서울시가 내놓은 안대로 개발지역의 약 22%를 저층 임대주택과 녹지 등으로 조성하면 비용이 늘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백사마을은 가파른 언덕으로 이뤄져 있어 한 쪽은 보존하고 다른 한 쪽만 깎아내 아파트를 지으면 구조 변경이 불가피하고 토지 이용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 경우 LH가 낼 수 있는 분양 수익이 축소된다.

LH는 6개월간 사업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해 9월 개발이익 비례율이 53.5%에 그친 것으로 발표했다. 서울시 가이드라인으로 측정한 비례율도 70% 수준인 것으로 내놨다. 개발이익 비례율은 분양 총자산에서 사업비용을 제한 뒤 종전 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즉, 현재 자산 가치가 재개발 후 어떻게 바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비례율 50%는 자산 가치를 재개발 후 절반만 인정된다는 뜻이다. 나머지는 재개발지 소유자들이 내야한다.

“주거지보존사업으로 주민들에
손해되는 건 없다는 결론이다”

LH가 내놓은 비례율을 적용해 사업을 진행하면 주민들이 내야하는 분담금이 늘어난다. 백사마을에 거주하는 한 권리자는 “서울시 안대로 하면 추가로 내야 하는 돈이 2억원에서 3억원에 이른다”며 “이렇게 가난한 동네에서 그런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이 돈을 내지 못한다는 것은 이 동네에서 쫓겨나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이후 LH는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시에 공원 녹지면적 축소, 용적률 상향, 소형평형 확대, 민관 합동 개발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원안을 고수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거지보존사업으로 주민들에 손해되는 건 없다는 결론이다”며 “용적률을 높여달라는 요구도 도시계획위원회 자문 결과 타당하지 않았다. 더구나 백사마을은 원래 1종 일반주거지역이지만 재개발을 위해 특별히 2종 용적률 200%로 해준 측면이 있다. 여기에 더해 용적률을 250%(3종)으로 올려달라고 한 것은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밝혔다. LH는 지난해말 사업을 포기했고 서울시 산하SH공사가 새 시행사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지쳐가는 주민들, 깊어지는 반목
지쳐가는 주민들,
깊어지는 반목

“우리는 투기꾼이 아니예요. 주택을 20년 이상 소유하고 있는 외부인도 있어요. 투기꾼이면 시세차익 보고 진작 나갔죠.”

황진숙 주민대표 인터뷰 / 촬영·편집 = 강유진, 정은비

황진숙(55세) 주민대표는 백사마을에 살고 있지 않다. 다만 백사마을에 집을 매수한 지는 18년이 됐다. 그는 올해 9월 주민대표로 선출 되기 이전부터 재개발추진 비대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재개발이 빠른 시간 안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백사마을에 살고 싶어도 지금 주택들은 손으로 밀면 담이 넘어질 정도로 열악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그는 서울시가 내놓은 주거지 보전 방식에 찬성한다. 이 탓에 서울시에 맞섰던 이전 주민대표 집단과도 갈등을 겪어왔다.

황 주민대표는 “LH가 내놓은 비례율 53.5%와는 달리 지역구 의원에 요청해 받아본 LH 초기 비례율은 90%가 넘었다. 이후 수정되면서 53.5%가 됐다. 비대위 시절 자체 자체적으로 조사를 했을 때도 비례율이 약 120%가 나왔다”며 “심지어 시행사인 LH가 그 전보다 훨씬 이익이 있다고해서 서울시 심의까지 통과 시켜논 안이다. 서울시 방식이 반대자 주장처럼 사업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거지 보존지역도 마찬가지다. 전면 개발안처럼 일반분양 절반, 임대아파트 절반으로 재개발하면 더 손해다. 왜냐면 임대아파트라는 것은 재개발을 하는대신 권리자 재산으로 지어서 서울시에다가 파는 구조기 때문이다. 파는 것도 표준형 건축비로 싸게 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임대아파트 비율이 많으면 많을 수록 권리자에겐 손해다”고 덧붙였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에 따르면 재개발 지역은 의무적으로 임대주택 건설을 해야 한다. 지난해 5월 의무비율을 현행 0~15%로 개정하기 전에는 임대주택 건설 의무비율이 17~20%였다. 백사마을은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대신 전체의 50% 가량을 임대아파트로 짓기로 했다. 따라서 보존지역 안이 나오기 전에는 분양아파트 1700세대, 임대아파트 1300세대가 백사마을에 들어설 예정이었다.

임영빈 주민대표 부위원장은 “서울시 안처럼 임대아파트가 아닌 임대주택으로 보존지역을 만들게 되면 권리자들의 손실이 줄어든다”며 “아파트를 만들어서 파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서울시한테 땅만 파는 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서울시가 알아서 마을 공동체 방식으로 개발한다. 우리(권리자) 입장에선 아파트를 지을 때 드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두막이더라도 내 집을 갖는 게 낫다"
"오두막이더라도
내 집을 갖는 게 낫다"

이에 대해 “터무니없는 소리”라 반박하는 주민들도 있다. 한 주민은 “백사마을은 그린벨트로 개발이 제한된 땅이라 값이 싸다. 도로 4m를 앞두고 공시지가가 2배나 차이가 난다”며 “공시지가대로 땅을 서울에 싸게 내 주고 보상금액을 받으면 다시 백사마을에 살 수 없다. 예를 들어 토지 보상으로 5000만원을 받는 사람은 3억원대 아파트로 돌아올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일부 주민은 재개발이 차라리 안 됐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원주민 김 아무개씨(57세)는 “외지인들이야 여기에 안 사니까 어느정도 보상받고 나갈 수 있다”며 “우리는 여기에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오히려 우리는 개발 안하고 리모델링해서 사는 게 낫다. 기반시설만 해주고 세입자는 국가에서 안아주고 그렇게 하면 된다”고 성토했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오두막이라도 내 집에서
살고 싶어한다.
분담금 낼 돈이 없어 마을을
떠나야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젊을 때부터 백사마을에 살았다는 한 주민은 “외지인들이 백사마을을 다 점령했다. 이 마을에 사는 원주민 수는 20%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 사람들 목소리가 클 수 밖에 없다”며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오두막이라도 내 집에서 살고 싶어한다. 분담금 낼 돈이 없어 마을을 떠나야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고 반문했다.

백사마을에는 조그마한 집들이 모여 약 1000세대를 이루고 있다. 재개발을 통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권리자(토지 등 소유자)는 140명정도다. 지분 구조로 권리자를 나누기 때문에 한 집에 권리자가 여러 명이 나오기도 한다. 이 중에서 분양받을 수 있는 권리자는 1250명이다. 토지만 갖고 있고 그 토지가 27평 미만인 권리자에게는 입주권이 나오지 않는다. 이들은 토지가 있음에도 임대주택으로 배정된다.

마을 교회로 올라가는 골목 어귀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이렇게 된 건 다 주민들 욕심이다. 예전에는 이 마을에 3000여명이 넘는 주민이 살았다. 넓고 좋은 곳이 아니더라도 자식들 키우며 즐겁게 지냈다. 하지만 더 좋게 살려고 하는 욕심이 모두를 속상하게 만들었다”며 쓸쓸하게 골목 밑을 내려 봤다.

“공동체 살리는 재개발 돼야”

전문가들은 한국의 재개발에는 중요한 것들이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이강훈 변호사는 “공동체가 파괴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선 개발과정에서 이해 관계자를 참석시키고 설득해야 하는데 계속해서 배제된다는 게 문제다. 특히 마을을 구성해온 세입자가 그렇다. 이주 대책이 없는 소유자도 다수결 논리로 쫓겨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강훈 변호사 인터뷰 / 촬영·편집 = 강유진, 정은비

이어 그는 “재개발의 목적을 되돌아 필요가 있다”며 “집만 멋있게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거주하는 사람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게 여건이 나은 곳으로 만들어 주는게 재개발 목적이다. 따라서 재개발을 통해 주거권, 인권침해를 받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예측 조사도 동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과거 부동산 성장 시기와는 다르게 재개발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주민들은 대개 재개발 사업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따라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주민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와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소식지도 만들고 블로그도 개설해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개발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덧붙여 그는 “재개발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수결을 통해 밀어부치기식 개발은 이미 낡은 방식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대화와 타협할 수 있는 시간들을 지속해서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백사마을 재개발은 표류 상태다. 여전히 갈등이 존재한다. 해소가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보존 지역 사업 타당성에 대해서 한 번더 검토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해서 시민들이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이나 전문가가 개입하면 시민들과 동 떨어진 의사결정 나올 수 있다. 양자를 조화시킬 수 있는 프로세스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는 원래 재개발 사업을 지원만 하는 형태다. 사업주는 주민과 구다. 그렇지만 시 차원에서 설명회도 고민하고 있다. 정보도 공유하고 할 것이다”며 “어려운 문제지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사업성 검증도 우선 제대로 돼야 한다고 본다. 다양한 사람들 말을 많이 듣고 앞으로도 많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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